비평과 서평/콘클라베(Conclave, 2024)

<콘클라베> - 관리자형 리더와 포용적 리더

zerovisualculture 2025. 4. 19. 12:26

Conclave

 속세에서 치뤄야 할 성스러운 의식, 콘클라베

한 신부가 재촉하듯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터널과 어두운 거리를 지나 도착한 곳은 교황이 선종(善終)한 바티칸 성당이다. 관객은 이 불안한 걸음의 주인공이 바티칸의 수석 추기경인 로렌스(랄프 파인즈)임을 곧 알게 된다. 교황의 유해(遺骸)는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옮겨지고, 교황의 방은 봉쇄된다. 수석 추기경 로렌스는 다음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준비를 위해 시스티나 성당의 보수 공사를 한다. 세계 각국의 추기경이 집결해, 3일에 걸쳐 여덟 번의 투표 끝에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다.

영화 <콘클라베>(conclave, 2024)는 표면적으로는 교황 선출 과정을 다룬 극영화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날 종교가 직면한 문제와, 종교가 지켜야할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남성 지도자 집단인 추기경단 내부의 권력 투쟁과 인간적 갈등, 그리고 리더십과 인간성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2016년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conclave’는 라틴어 cum(with, 함께)clave(key, 열쇠)의 합성어로서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외부와 단절한 채 성당 내부에서만 이뤄지는 교황 선출 제도를 뜻한다. 이 영화는 자칫 종교 내부자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설교조로 흐를 수 있는 종교 영화를, 상징적 이미지와 사운드, 연대기적인 서사, 캐릭터 중심의 구성으로 탈바꿈시킨, 일종의 아트버스터영화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콘클라베>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수석 추기경 로렌스기 리더라는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갈등하는가에 있다. 선종한 교황은 로렌스를 자신이 죽은 후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관리자로 지명한다. 이에 로렌스는 영화 초반에 혼잣말로나는 관리자라고!’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는 진보주의자인 알도 베니니 신부를 교황으로 선출하려는 세력에 포함되어 있으며, 본인 또한 진보적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알도를 비롯한 유력한 교황 후보들은 이러 저러한 각자의 이유로 낙마한다.

아데예미와 트렘볼레이는 각각 성추문과 성직매매로 인해 낙마한다. 한편, 동성애와 낙태에 찬성하고 여성에게 더 많은 종교적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급진적 진보주의자인 알도 베니니는 높은 지성에도 불구하고 지지세력이 부족하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과거처럼 교황직을 이탈리아인에게 되돌리자는 테데스코 추기경뿐이다. 로렌스를 비롯한 다수의 추기경들은 그가 다양성을 부정하고, 이슬람과 전쟁을 주장하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판단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정하게 콘클라베를 주관하던 로렌스는 점차 자신이 동료 추기경들을 조사하고 폭로하는 이유가 자신이 교황이 되려는 이유 때문이라고 의심을 받는다. 일곱 번째 투표에 이르자, 로렌스는 결국 데테스코가 교황이 되느니 차라리 자신이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쓴다. 그러나 직후, 성당 천장에서 폭탄이 터지며 투표는 무효가 된다. 그리고 여덟 번째 투표에서 마침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베니테즈 신부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난가병을 의심하라!

로렌스를 가장 자주 보여주는 앵글은 그의 뒷 모습이고, 대부분 1인 쇼트로 잡힌다. 권위를 지닌 지도자는 우유부단하고 번민이 많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이다. 그러나 그는 일곱 번째 투표에서 자신에게 투표를 한다.‘나는 매니저야라고 되뇌이면서도 그는 어느새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기계적 중립의 관리자가 아닌, 당파적 입장을 지닌 정치적 행위자가 되어간다. 로렌스는 보다 나은 진보적인 카톨릭을 고민하지만, 권력이 바로 눈 앞에 왔다고 느낀 순간, 그는 잠시 눈이 멀어버린다. 그 자리가 내 자리인가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알도는 로렌스에게 나는 거룩함 속에 불나방이었다고 고백한다. 권력에 눈이 멀어 무모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다. 알도만이 아니다. 로렌스 또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리더가 되려는 만용을 부린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영화는 진정한 리더란 자발적으로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과정 속에서 비자발적으로 선택받는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콘클라베 의식의 폐쇄성과 자기 확신을 반복하는 오늘날 조직에 경고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조직은 두 유형의 리더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로렌스 신부 유형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공정한 절차를 중시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자의 면모를 지닌다. 또 다른 인물 유형은 베니테즈 신부 유형이다. 그는 멕시코 출신으로, 카불에서 선교생활을 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해온 인물이다. 베니테즈는 다른 추기경을 향한 연설처럼 증오에 굴복하고 편을 나누지 않는 평화주의자에서 나아가, 주변부 인물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친 포용적 리더이다.

바람과 빛을 향해 나아가는 리더

<콘클라베>에서 말하는 리더는 자신의 자리와 이익에 눈이 먼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베니테즈처럼 약자를 품을 수 있는 인물이자, 로렌스처럼 자신의 만용을 성찰할 줄 아는 자이다. 시대의 방향, 즉 닫힌 성당안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빛에 응답하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있는 관리자형 리더가 바로 그 주체이다. 닫혀 있는 콘클라베의 문은 영원할 수 없다. 폐쇄된 조직은 결국 고립되고 썩어갈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조직은 반드시 열리고 개방되어야 한다. 영화는 그 메시지를 신부들의 하얀 우산 행렬, 연못을 벗어 나려는 바다 거북, 폭탄을 맞은 성당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빛,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는 수녀들의 모습 등으로 감각적이며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결국 두 가지 리더 유형, 즉 절차적 정의를 지키는 관리자형 리더와, 주변부를 끌어안는 포용적 리더가 폐쇄된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