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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객체의 시점, 오버뷰 이미지 –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를 중심으로 (2/3)

zerovisualculture 2025. 5. 14. 19:29

목차 

1. 서론: 인류세의 아포칼립스

2. 하이퍼객체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의 세 가지 분류

3. 오버뷰 이미지: 신의 시점의 세속화

4. 종말이 드리운 맑은 하늘 - <놉>의 움직이지 않는 구름

4.1. 지배와 감시의 공간으로서의 하늘

4.2. 하이퍼객체로서의 구름

5. 결론

 

3. 오버뷰 이미지: 신의 시점의 세속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기원이 되는 성서적 의미에서 신은우리에게 작용하면서 무언가를 강제하는 힘을 지닌 그 존재, 하이퍼객체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성서에서 신은 온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하늘, 즉 천상에 존재한다. “성서에서 신은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하늘에서 시나이산으로 내려와 스스로 말했다고 전한다.”(14) 예언자 모세는 신이 천상에 거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은 하늘에서 시나이산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계시되었다. 만약 땅이 종말로 인해 환란에 휩싸이는 혼돈의 자리라면, 하늘은 신이 거주하는 천상의 자리이자,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인간과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있음의 자리였다. 하늘의 절대적 계시로 땅은 종말을 맞이하며, 이러한 관계는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처럼 설정되었다. 그러나 인류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은 하늘을 관찰하고 접촉할 수 있게 되었고, 신의 자리 또한 세속화되었다. (15) 신의 얼굴을 인간이 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한계로 인해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하늘은 더 이상 초월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에 의해 열린 공간이 되었다.

오버뷰 이미지(overview image)는 이러한 세속화된 신, 즉 인간의 시각으로 열린 하늘을 의미한다. 오버뷰 이미지는 언제나 인간보다 절대적으로 더 높은 곳에 존재하던 신의 자리가 인간에게 이전되면서 발생한 광학적 시점이다. 간단히 말해, 오버뷰 이미지는 상공이나 위에서 내려다본 이미지를 의미하며, 육체를 지닌 인간이 중력의 힘을 딛고 서 있는 한, 도구 없이 볼 수 없는 시각을 초월한 이미지이다. 오늘날의 광학 기술은 우주적 시점(극대)과 해부학적인 시점(극소) 간의 실제 거리를 축소하고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16) ,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포스트필름 시대는 인간의 눈으로부터 탈주를 알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오버뷰 이미지는 인간의 시각이 탈육체화된 기계의 시각으로 전환된 그 시대에 추출된 이미지이다.

원래 오버뷰 이미지가 갖는 효과는 흔히 오버뷰 이펙트(overview effect)라고 불린다. 오버뷰 이펙트란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보면서 경험하는 인지적 변화를 의미한다. 프랭크 화이트(Frank White)가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경이로운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의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그림1]과 [그림2])(17)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는 약 5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통신 위성에 둘러싸이며 전혀 다른 형상으로 변해버렸다([그림3]). 인류세의 하늘은 더 이상 신의 자리도 아니며,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시점 또한 상실한 공간이 되었다.

지구출몰푸른 구슬우주 폐기물들
[그림1] 지구출몰 [그림 2] 푸른 구슬 [그림 3] 우주 폐기물들

유엔 우주사무국(UNOOSA)에 따르면, 20221월 기준으로 8,261개의 위성이 지구 저궤도를 돌고 있다. 이 중에서 통신이 끊긴 위성부터 작동이 중지된 채 우주에서 정지된 위성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지구는 이러한 우주 쓰레기로 둘러싸여 있다. 우주의 산업 폐기물과 같은 인류세의 하이퍼객체는 오버뷰 이펙트가 주는 경이로움을 위기감으로 전치 시킨다. 하이데거는 오버뷰 시점 자체, 즉 지구-세계 전체가 그림으로 재현되는 것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현대의 근본적인 사건은 세계를 그림으로 정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림’(Bild)은 이제 인간이 창조한 구조적 이미지(Gebild)를 의미하며, 이는 인간이 생산하고 제시하는 것이다....세계가 인간에게 정복된 상태로 더 넓게, 더 효과적으로 제공되면 될수록, 객관적인 대상이 되어 보일수록, 주체는 점점 더 주관적으로, 즉 더 간절하게 떠오르고, 세계에 대한 관찰과 가르침은 인간에 대한 교리, 즉 인류학으로 변하게 된다. 세계가 그림이 될 때 인간주의가 처음 발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18)

회화, 사진, 영화 등 시각 매체가 세계를 그림으로 정복하는 과정은 인류 중심주의적(anthropocentrism)에 기반한 것이다. (19) 하이데거는 세계가 그림으로 포획됨으로써 인간의 경험만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세계상이 세계-존재를 대체한다고 보았다. 이제 천상의 존재를 믿었던 하늘은 대기권과 궤도로 분류되고, 계산되며, 데이터와 정보의 장소로 변형된다. 결국 하늘은 인간-기계의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인 객체가 된다. 오버뷰 이미지는 탐사되어야 할 공간에 대한 호기심, 우주의 이용 가능성을 조사하는 과학적 이성, 그리고 더 보려는 시각적 충동 속에서 세계-지구-행성이라는 하이퍼객체를 인류 중심으로 통합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하늘이 열리고, 그것이 얼굴을 갖게 되면서 드러나는 것은 절대적인 진공, 우리가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없는 세계는 유진 새커 (Eugene Thacker) 의 개념으로, 이는 우리(인간)를 위한 세계(world-for-us, 세계), 세계 자체(world-in-itself,지구), 그리고 우리가 없는 세계(world-without-us,행성)의 구분을 통해 설명된다. 유진 새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을 위한 세계는 우리 인간이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이다. 세계 자체는 이미 주어진 상태에 있는 어떤 세계를 말한다. 우리가 없는 세계는 세계로부터 인간이 사라진 상태이다. (20) 지금의 오버뷰 이미지는 데이터와 정보의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되는 기계적 시각의 산물이며, 인간이 사라진 채 지속되는 운영 이미지(operative image)로 전환된다. 허블 망원경과 제임스 웹 망원경이 촬영한 수많은 우주 이미지, 구글 어스, 위성 데이터, 드론, CCTV 감시 시스템, 그리고 기계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은 모두 이러한 우리 없는 세계의 시각적 잔재들이다.(21) 현재의 위성 이미지, 망원경 데이터, 그리고 자동화된 감시 시스템은 인간의 지각과는 관계없이 기계 간 네트워크로 운영되고 창조되는 이미지이며, 이는 반응 쇼트가 부재한 채 우리가 사라진 시점에서 지속되는 순수 스펙터클이기도 하다. 절대적 존재가 거주하던 하늘을 인간의 오버뷰 시점이 차지하면서, 인간은 이를 통해 인간을 위한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기계 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하늘을 통해 우리 없는 세계를 예고한다. 우리가 없는 세계는 인류 이전에도 존재했듯이 인류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하이데거의 우려대로 세계 자체를 그림으로 극소화하는 순간, 우리가 없는 세계는 이미 도래하고 있다. 지금의 이 세계는 인류의 종말에, 그야말로 열려있다.

4. 종말이 드리운 맑은 하늘 - <>의 움직이지 않는 구름

 

4.1. 지배와 감시의 공간으로서의 하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인 <스테이션 일레븐>(Station Eleven, 2021)은 독감으로 인해 전 세계 인구의 95%가 사망하고 문명이 몰락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생존자들은 곳곳에서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고 있으며,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하는 유랑극단이 부족들을 오가며 공연을 펼친다. 원작 소설에는 문명의 몰락으로 인해사라진 것들의 목록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비행이다.(22) 드라마에서는 생존자 캠프가 된 공항과 불시착한 비행기를 통해 문명의 마지막 비행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오버뷰 시점은 인류의 종말과 함께 사라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오버뷰 시점은 대부분 천상의 자리를 지배와 통제의 권력이 대체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하늘의 테크놀로지화는 곧 지배 시스템의 물질화로 나타난다. <엘리시움>(Elysium, 2013)에서는 부유한 자들만이 거주하는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이 등장하며, 지구의 빈곤층은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설정된다. <크리에이터>에서는 거대 비행선 노마드가 일종의 공중 파놉티콘처럼 작동하면서 하늘에서 지구를 감시하고 지배한다. <오블리비언>(Oblivion, 2013)에서는 우주에서 지구를 감시하는 인공지능 우주선 테트가 등장하며, 드론을 통해 지구를 통제한다. 이처럼 하늘에 떠 있는 지배 시스템은 중력의 법칙을 초월하며, 인간의 지각을 벗어난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계 간의 통신과 운영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며, 인간이 볼 수도 없다. 결국, 그것은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지속되는 자동화된 지구 행성의 운동이 된다.

<>(23)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영화 속 하늘을 지배와 통제의 권력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간을 피지배자로 보았다. 또한, 외계 생명체의 눈을 감시자의 파놉티콘으로 간주하며, 이를 미디어 시대의 감시와 시선의 상징으로 분석했다.(24) 전주희는 <>이 전시 사회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행위가 지닌 폭력성을 조명한다고 보았으며, 제목인 <>이 과학기술 문명의 긍정성을 멈추는 부정성을 함의한다고 해석했다. 한편, 김태은은 <>에서의 시선을 감시와 시선”, “은유적 장치로써의 시선”, “영화에서의 감시와 역감시로 구분하여 현대 사회의 감시 문화를 <>을 통해 분석한 바 있다.

본 논문은 기존의 지배자-하늘과 피지배자-땅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하여, 하늘, 구름, 인간의 상관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 주목한다. 본 논문은 첫째, <>을 인류세 시대라는 맥락에서 분석함으로써 이전 연구가 중점을 두었던 미디어 사회의 감시 시선과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한다. 이는 앞서 분류한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의 두 가지 범주에서 벗어난 위치에 <>을 놓는 것이다. 기존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앞서 논한대로 종말에 대한 위기감과 불안을 증폭시킨 후 이를 해결하려는 영화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인지적 지도를 그리려는 영화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은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이는 구름이라는 하이퍼객체의 등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둘째, <>에서는 현재에 이미 내재해 있는 미래, 즉 종말이라는 시간의 불연속성과 어긋남 자체가 구름의 변조로 표현된다는 점을 논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미확인 물체에서 출발하기보다 구름이라는 자연의 변신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인간이 오버뷰 이미지를 소유하는 데에 실패한 흔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본 논문은 통제와 감시를 통해 포착되는 구름의 시선, 즉 인간의 시선과 구름이라는 대상에 의해 포착되는 응시(통제와 감시의 시선)간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한어긋난시선에 집중한다

각주

(14)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최형익 역,신학정리론/정치학논고, 비르투, 2011, 27.

(15) 신은 예언자 모세에게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누구도 내 얼굴을 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라고 말한다.’ 신의 얼굴을 인간이 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다. 스피노자, 위의 책, 57.

(16) 조혜영은 포스트 필름적 특징으로 <매트릭스>의 블렛 타임 효과를 예로 든다. “정지와 운동, 시간의 순간과 노출, 프레임과 쇼트, 감속과 가속, 자연과 기술, 극대와 극소, 오래된 매체와 새로운 매체 간의 전환을 스크린 위에 전경화한다.” 조혜영은 이를 확장하여 포스트필름 영화에서 정지와 모션의 합성과 두 운동 사이의 전환의 과정의 가시화는 세계 자체가 되는 자아와 우주적 우리, 마음과 세계, 극대와 극소, 무한한 정보와 희박한 정보 등의 매끈한 연결과 유비 관계를 이룬다고 논한 바 있다. 조혜영, 영화의 죽음: 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박사논문, 2013, 각각 127쪽과 138.

(17) Frank White, The Overview Effect: Space Exploration and Human Evolution, AIAA, 1998.

(18) Martin Heidegger,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and Other Essays, New York and London:Garland Publishing, INC. 1977, p.133~134.

(19)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또한 1960~70년대 당시 소련과 미국에서 시행되던 인간의 우주 정복의 꿈이 지구 중심적이고 인격화된 것일 가능성이 큰 시도라고 보았다. ‘우주가 아닌 지구가 필멸할 인간의 중심이자 안식처라는 의미에서 지구 중심적이며, 인간이 자신의 과학적 노력이 가능한 기초적 조건들 속에 자신의 사실적 필멸성을 집어넣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이다.’ 한나 아렌트, 서유경 역,과거와 미래 사이: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푸른숲, 2005, 373.

(20) 유진 새커, 김태한 역,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철학의 공포, 필로소픽, 2022, 12~19.

(21) 구글 어스, 위성, 드론, CCTV의 감시, 통제, 기계의 시점을 표현하는 하즈라 와히드(Hajra Waheed)와 하룬 파록키 (Harun Farocki) 의 예술 작품을 감시 미학 혹은 평평한 표면 미학(the flatbed aesthetics)으로 분석하는 글은 Jakub Zdebik, “Surveilling Aesthetics: Waheed’s Overhead Images and Faroki’s Operative Image”, Deleuze and the Map-Image: Aesthetics, Information, Code, and Digital Art, New York: Bloomsbury Publishing Inc, 2024을 참조하시오.

(22) 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을 인류세 시대 팬데믹 이후의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은 송은주, 「『스테이션 일레븐: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영미연구52, 2021, 25~52쪽을 참조하시오.

(23) 제목인 <>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Nope’이라는 제목은 일반적으로 지구 행성의 것이 아닌’(Not of Planet Earth)의 약자를 의미한다거나, 인간이 두려운 어떤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성향, 즉 두려움을 거부하는 인간의 성향을 뜻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 감독인 조던 필(Jordan Haworth Peele)<>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고,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이 느끼는 반응 혹은 에너지를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Lester Fabian Brathwaite and Lauren Huff, Jordan Peele reveals the meaning of Nope and why he wants you to yell it out, https://ew.com/movies/jordan-peele-nope-inspiration/, 2022/04/27.

(24) 김태은, 영화 <Nope>속 외계 감시자의 시선-라캉의 스크린 이론과 푸코의 파놉티콘을 중심으로, Contents Plus: 한국영상학회논문집,22, 2024, 63~76. 전주희, 전시 사회에쳐다보기의 폭력성과 과학기술문명의 긍정성 재고-영화 <>(NOPE)에 나타난 외계생명체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문학과 환경,23, 2024, 15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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