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안티 피노키오 2 : <피노키오>(2022)
파시즘 시대와 규범적 생명
<A.I.>에 이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에서의 피노키오 또한 또 다른 안티 피노키오다. 피노키오가 착한 행동을 해서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식의 각색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선함과 악함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는 과정을 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두 편 모두 안티 피노키오라 할 수 있다. <A.I.>가 착한 피노키오가 그 순수함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는 꼭두각시이거나 AI 이거나 비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델 토로 감독은 콜로디의 원작『피노키오』에서의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라는 배경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로 옮긴다. 전쟁으로 인해 친아들인 카를로가 10세의 나이로 죽자, 제페토는 카를로와 닮은 꼭두각시 나무 인형을 조각한다. 어느 날 푸른 요정이 와서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부여해 주면서 피노키오는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세상을 모두 만지려는 아이가 된다. 꼭두각시 인형극단 단장인 볼페 백작은 피노키오를 꼭두각시 공연에 이용하려 하고, 마을의 시장이자 파시스트인 포데스타는 피노키오가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전쟁 훈련에 참여시킨다. 여러 번의 죽음에서 돌아온 피노키오는 결국 함께 살던 제페토가 죽고, 선생과 같던 세바스티안이 죽고, 친구였던 스파자투라마저 죽자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반복, 부활, 순환
<피노키오>에서 주목할 점은 첫째, 피노키오라는 캐릭터이다. 외형은 꼭두각시 나무 인형을 유지하지만, 피노키오는 <A.I.>에서의 데이비드보다 더 AI의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피노키오의 탄생 장면을 보면, 술에 취한 제페토가 목각 작업을 한 후 잠이 들고, 푸른 요정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푸른 요정은 주문을 걸어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주고,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에 피노키오가 부활할 때 다시 한번 같은 주문을 건다. ‘소나무로 만든 작은 나무 소년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피노키오다. 태양과 함께 깨어나 땅 위를 거닐 거라. 그리고 저 상처 입은 이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거라. 그의 아들이 되어라. 그의 나날들에 빛이 되어라. 다시는 외롭지 않도록.’ 그러자 피노키오는 전기가 온몸에 퍼지듯이 빛이 퍼지면서 생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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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토로 감독의 <피노키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처럼 별에서 온 푸른 요정이 요술봉으로 피노키오에게 한순간의 빛을 던지는 장면이 아니라, 요정이 만지자 피노키오의 몸에 전기가 흐르는 시각적 표현을 택했다. 우리 몸 또한 전기신호로 움직인다. 세포막의 80mV의 전압을 통해 전기신호가 이동해야 심장이 뛰고 근육이 움직이는데, 피노키오에게 전기 자극을 주는 이러한 표현은 인간과 기계가 모두 전류로 작동하는 공통점을 강조한다. 이후 피노키오는 옳고 그른 것을 배우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옳아야 하는지, 왜 나쁜 행동인지를 반복과 실수를 통해서 알려고 한다. 닥치는 대로 만지고, 깨뜨리고, 부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피노키오는 그야말로 불완전한 비인간이다. 전류가 흐르는 기계로 피노키오를 인지한다면, 이는 쉽게 어린이 기계(child machine)에 대한 튜링의 생각과 연관된다.
튜링의 어린이 기계
튜링은 “어른의 사고를 모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아이의 사고를 모방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런 뒤 이 프로그램에 적절한 교육을 하면 그 결과 어른의 지능을 얻게 될 것이다”(12) 라고 제안했다. 튜링은 컴퓨터에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을 마치 아이에게 교육하는 과정처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초기에는 씨앗이 될 수 있는 단순한 프로그램(Seed)으로 시작한 뒤, 학습과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복잡하고 유능해지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이 아이디어는 이후 씨앗 인공지능(Seed AI)의 자가 개선 메커니즘으로 발전한다. 단순하게 시작해서 복잡한 네트워크를 갖게 되는 어린이 기계가 복잡성을 갖기 위해서는 학습이 중요하다.
오늘날의 머신 러닝 학습은 아이들처럼 반복과 실수를 통해 데이터를 정제하고 수정된 아웃풋을 내놓는다. 머신 러닝의 반복 학습에 대해 튜링은 덧붙인다. “물론 한 번의 시도로 훌륭한 어린이 기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하나를 만들어서 그것을 가르쳐보고 얼마나 잘 학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 또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 기계를 만들어서 이번에는 얼마나 더 잘 학습하는지 또는 잘 못 하는지를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공지능의 진화와 분명히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진화보다는 이 방식이 더 신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13)
<A.I.>에서 데이비드는 학습이나 오류 개선의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어린이 기계였다. 한편 천방지축인 <피노키오>에서의 피노키오는 학습할 수 있고, 그만큼 호기심도 왕성하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세계, 즉 파시즘이 지배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인 어른들을 그대로 모방하고 복종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는 아이들의 일반적인 내러티브의 특징을 벗어나 있기에 아이들과는 다른 어린이 기계의 특징으로 전유할 수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2) Alan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49(1950) : 456.
(13)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456.
※ 이 글은 「피노키오, 안티 피노키오, AI」(현대영화연구, 2025)를 연재용으로 편집 분할한 5 / 7 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