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평/에밀리아 페레즈(Emilia Perez, 2024)

<에밀리아 페레즈> - 자크 오디아르 영화의 ‘폭력’ 이라는 문제

zerovisualculture 2025. 4. 24. 18:00

에밀리아 페레즈

<에밀리아 페레즈>는 트랜스 젠더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주연으로 나와 화제가 된 영화다. 뮤지컬, 범죄,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들이 혼합된 이 작품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최다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르며 이례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전환 이후의 정체성

영화는 멕시코 마약 범죄 조직의 마초적인 두목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델 몬테의 소원은 여자가 되는 것. 그는 변호사 리타(조이 살다나)를 고용해 성전환 수술을 비밀리에 준비하고, 아내인 제시(살레나 고메즈)와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죽은남성인 델 몬테를 뒤로한 채, 여성인 에밀리아 페레즈로 새 삶을 시작한다.

성전환 수술이 끝난 후 4년이 지나자 페레즈는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어 리타를 다시 고용하고, 자식과 전 부인인 제시를 멕시코의 자신의 집에 데려온다. 하지만 가족과의 재회는 곧 비극의 시작이 된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복잡한 이슈들을 실험적으로 풀어낸 하나의 장(field)이다. 노래, 서사, 장소, 장면, 인물이 얽힌 영화는 폭력, 권력, 윤리의 밀도를 채우고 강도를 발산한다. 그 중 트랜스 젠더라는 섹슈얼리티와 멕시코라는 장소성이 먼저 부딪친다. 

페레즈를 연기한 배우 가스콘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지만, 멕시코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이 영화에 비판을 더했다. 범죄로 시작해서 범죄로 끝이 나는 멕시코는 한 마디로 마약, 폭력, 범죄, 살인이 자행되는 무법 지대처럼 재현되었고, 반면 스위스는 가족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평화로운 장소로 대비된다. 이 이분법적 재현은 탈식민주의 영화비평의 개입을 유도할 만큼 강한 장력을 형성한다.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문제적인 이 장에서 주목할 지점은 두 갈래다. 하나는 영화가 트랜스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다루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자크 오디아르라는 감독의 작가론적 시각이다.

먼저 트랜스 젠더 정체성을 영화가 다루는 방식을 살펴보자. 영화는 크게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된다. 1막은 델 몬테가 성전환 수술을 통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행하는 이행기, 2막은 페레즈가 멕시코에서 옛 가족과 재회하는 재회기, 3막은 페레즈의 죽음이다. 성전환 수술은 영화 초반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초점은 성전환이라는 트랜지션 자체가 아니라, 트랜지션 이후에 형성되는 정체성이다. 이는 정체성이 단지 개인의 자신의 몸에 대한 실존적 결단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이 놓여 있는 사회적 배치, 관계의 맥락, 감정의 지형 등을 통해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성인 델 몬테를 죽이고, 여성인 에밀리아 페레즈로 다시 태어난 페레즈는 자신을 남편이자 아버지로 알고 있던 가족과의 감정적인 유대를 놓지 못한다. 폭력에 익숙했던 델 몬테의 흔적은 여전히 멕시코에 가까이 있으며, 탈법과 위법은 페레즈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더 근본적으로, 조직의 마초 보스였던 남성의 여성 되기는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델 몬테는 죽었다는 서사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말하지만 <에밀리아 페레즈>에서 (페레즈의) 성정체성은 개인의 실존적 결단에서 나아가 그것이 놓여 있는 사회적 배치를 통해 획득되는 것임을 보여준다영화는 젠더 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말했던 정체성의 수행성을 상기시킨다. 성정체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규범, 제도와 시선 속에서 수행되고 구성되는 것이다.

노래를 통한 발화의 정치

<에밀리아 페레즈>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이 전개를 시각적으로, 정동적으로 펼쳐낸다. 세 명의 주인공인 페레즈, 리타, 제시는 각각 노래를 부르지만, 그 형식은 서로 다르다. 페레즈와 리타는 혼잣말처럼, 혹은 누군가와의 은밀한 대화처럼 노래를 부른다. 반면 제시는 여러 사람과 함께 집단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페레즈와 리타의 노래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파르헤시아(parrhesia), 즉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진실을 말하는 발화라고 할 수 있다. 페레즈는 과거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표현하고, 여성이 되고 싶은 내적인 갈망을 노래한다. 리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나 사회를 향한 비판을 방백처럼 노래한다(특히 의사와 벌이는 성전환 수술에 대한 논쟁을 노래로 표현하는 부분은 법과 의학이 논쟁하는 장면이라 듣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발화는 타자가 들어 달라는 말보다는, 말하지 않으면 자신일 수 없기에 터져 나오는 윤리적 말하기라 할 수 있다.

반면 델 몬테의 아내였던 제시(살레나 고메즈)는 집단적인 퍼포먼스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합창을 한다. 심지어는 노래방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화면을 직접적으로 내보내면서 그녀가 '보여주기식' 노래를 부른다는 걸 보여준다. 제시의 노래는 분명 페레즈와 리타의 노래와는 다르다. 그녀는 말함으로써 승인받고 과시하는 자아를 보여준다. 이 대비는 영화가 정체성과 말하기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분할하는지를 드러낸다.

자크 오디아르의 세계: 폭력과 남성성의 역설

<에밀리아 페레즈>를 자크 오디아르(Jacques Audiard)의 필모그래피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예외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얼마 전에 재개봉한 <예언자>(2009)를 비롯해서 <러스트 앤 본>(2012),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등에서 줄곧 폭력과 남성성의 관계를 탐색해 왔다. 그는 마치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유일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스텔라 마리스를 남긴 소설가 코맥 맥카시 만큼이나 평생을 남성들의 세계를 파고든 감독으로 유명하다. 아버지와의 관계, 젊은 남성의 성장, 밑바닥 남성의 구원, 거칠고 어두운 카메라, 감옥과 범죄, , 폭력 등 아드레날린을 화면에서 내뿜으면서 평생을 남성성(virility)을 탐구한 오디아르. 그가 말하는 ‘virility’란 남성으로서의 힘, 강인함, 또는 생식 능력 등을 말한다.

오디아르는 <예언자>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폭력은 남성성의 거부입니다... 제 영화에는 이미 어떤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실패한 남성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남성은 위축되고 그것을 폭력으로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이는 <에밀리아 페레즈>에도 적용된다. 페레즈는 물리적인 힘이 지배하는 세계를 벗어나 여성이 되길 원했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결국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보복이었다.

오디아르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트랜스 젠더건, 시스 젠더건, 게이이건, 레즈비언이건, 퀴어건 간에 폭력은 결국 의미를 상실한 텅 빈 기표를 향한 헛된 실패로 남는다고 말하는 듯 하다. 오디아르의 영화 세계에서 폭력은 중심이며, 그 텅 빈 기표를 차지하려는 반복적인 폭력 행위가 정체성을 구성하고, 사회를 구축하며 영화를 만든다. 그 폭력 이후, 우리는 누구로 남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