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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아카이브/아감벤: 영화의 윤리학을 위하여

[아감벤] 영화의 윤리학을 위하여(1/2)

by zerovisualculture 2025. 5. 7.

영화의 윤리학을 위하여

For an Ethics of the Cinema

I. 유형(type)

발터 벤야민은 망명 말년을 파리에서 보내던 시기에 프랑스어로 작성한 「보들레르의파리의 풍경에 대한 단상」에서, 현대 도시의 군중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한 가지악몽을 불러낸다. 그것은 바로 어떤 사람의 독특한 특징들이 처음에는 그 사람의 고유성과 엄격한 개별성을 보장해주는 듯 보이다가, 차츰 새로운 유형(type)의 구성 요소들을 드러내며, 결국 그 자체로 새로운 하위 범주를 설정하게 되는 경험이다. “그 자신의 복수성 속에서 언제나 동일하게 제시되는 개인, 아무리 특이한 개성을 갈고닦으려 애쓴다 해도 결국유형이라는 마법의 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인의 불안을 증언한다.(1)

만약 우리가 벤야민의 이러한 묘사를 정확하다고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현대인이 이미 되돌릴 수 없이 유형이라는 마법의 원속으로 진입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필연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인간 종의 개체화 원리 자체에 관한 본질적인 변이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 genus)로부터 개체(個體, individual)로 진행되는 개체화(individuation), 말하자면 허공에 매달린 채 정지되어 있으며, 이전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species) 의 개체를 이루던 존재들은 이제 보편도 특수도 아닌, 유형이라는 고유한 영역 속에서 부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형은 단순한 일반성으로 환원되거나, 어떤 결정의 결여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벤야민의 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완벽히 규정된 존재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바로 자신을 식별해주어야 할 그 특징들 덕분에 갑자기 탈규정화되어, 하나의 연쇄를 생성하는 원리가 된다.

실제로 이와 같은 변형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우리는 그것을 변형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광고, 포르노그래피, 텔레비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를 그러한돌연변이 존재들에 익숙하게 만들어 왔다. 그들은 개인과 계급 사이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가장 특유한 특이성(idiosyncrasies) 속에서조차 철저히 일련의 연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에게 미소 짓는 그 젊은 여성, 해변을 달리며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흔드는 또 다른 여성은 그 각각이 중세 신학의 천사들처럼 그 각각이 하나의 종을 이루는 그러한 사람들에 속한다. 이들은 원본과 복제의 구별을 피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매혹은, 크게는 바로 그 능력 때문인데, 그 능력은 정확히 말하자면, ‘천사적인능력으로서, 자신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보이는 그 무언가를 통해 스스로를 전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해 내고, 매번 새롭고 유일한 예로서 자신과 혼동되도록 만든다. 매번 아무런 잔여도 남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독점적인 캐릭터는 이제 일련의 복제를 낳는 원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유형의 정의이며, 동시에 그것이 상품과 얼마나 밀접한지를 드러낸다. 사실, 이 과정에 대한 친숙함은 태곳적부터 존재해 왔다.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유혹의 힘을 끌어내는 가장 오래된 수단들, 즉 화장과 패션의 바탕에 놓여 있다. 화장과 패션은 개인의 몸이 지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함을 윤곽지어, 그 독자적 특징들을 일련의 원칙, 즉 반복 가능한 형식으로 전환시킨다. (보들레르에게 화장이란피부의 질감과 색조에 하나의 추상적 통일성을 창조한다. 그것은 스타킹이 만들어내는 통일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즉각적으로 조각상, 즉 신적이며 우월한 존재에 가깝게 만든다.”)이러한 수단을 통해 인류는, 어쩌면 가장 오래된 불안, 즉 살아 있는 존재가 지닌 돌이킬 수 없는 독특함이 야기하는 공포에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다.

II. 가면(Persona)

항상 존재해왔던 한 영역이 있다. 그것은 유(, genus)와 개체(個體)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들이 움직이는 영역인데, 바로극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성적 존재들이 바로 등장인물들(characters)이다. 등장인물은 피와 살을 가진 한 개인배우, 작가가 써낸 역할이 만남으로써 생겨난 결과물이다. 배우에게 이 만남은 특별한 변형을 요구한다. 이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리를 위해 자신을 종속시켜야 하는 일종의 의례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그는 가면(persona)을 쓴다. 이는 그가 개인적 삶의 우여곡절로부터 벗어나 더 높은 삶으로 이행했다는 신호이다.이러한 대비는 어떤 전통들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발리 전통극에서는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아르토가 매료되었던 바로 그 발리 극장은 이러한 무아지경의 상태를루파(lupa)’라고 부른다.

서양 윤리의 체계를 구축한 스토아학파가 도덕적 패러다임을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의 이미지 위에 모델링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본보기가 되는 태도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동일시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의 태도다. 이런 방식으로, 단독자는 자신이 썼던 가면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시작한다. 그는 가면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스스로 사람(person)’이 된다.  

그러나 이 만남이 언제나 등장인물을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전혀 다른 윤리학을 요구한다. 예컨대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는, 가면이 더 이상 배우를 더 높은 세계로 이끄는 매개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가면은 하나의캔버스처럼 배우에게 주문을 걸어, 극장의 장면과 실제 삶 사이의혼종성을 일으키는 제3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아를레킨, 푼치넬로, 판탈로네, 벨트라메(2) 같은 인물들은 단순한 조연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삶의 실험(experimentum vitae)과 같은 존재들이다. 여기서 배우의 정체성과 배역의 정체성은 동시에 해체된다. 이러한 배역들을 통해, 우리는텍스트와 실행’, ‘가능태와 현실태사이의 관계 자체가 의문에 부쳐지는 것을 목격한다. 전통 윤리의 범주들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잠재성과 현실성의 혼합된 무엇이 그들 사이로 스며든다.

이러한 극장과 현실 사이의 혼종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희극 배우들이 자기 서명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본인의 실제 이름과 가면의 이름을 결합한다. 니콜로 바르비에리, 일명 벨트라메. 도메니코 비안콜렐리, 일명 아를레킨. 마리오 첸니니, 일명 프리텔리노. 여기서는 더 이상가면의 이름(nom du masque)’이 단순한 예명(nom d’artiste)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탈마, 일명 오이디푸스라든가엘레오노라 두세, 일명 노라와 같은 표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근대 연극이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배우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교훈은 결코 버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신체는 어떤 불안한 예언의 장소였고, 그 예언은 두 세기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완결될 수 있었다.

각주

(1) 이 인용은 발터 벤야민의 「보들레르의파리의 풍경에 대한 단상(Notes sur les Tableaux parisiens de Baudelaire)(1939)에서 발췌된 것으로 보이며, 이 글은 『프랑스어 저작들(Écrits français)(1991)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의 확장된 프랑스어 버전은 다음과 같다. “이 악몽은, 처음에는 고유성과 엄격한 개별성을 보장해주는 듯 보이는 어떤 인물의 특이한 특징들이, 결국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하위 분류를 형성하게 될 새로운 유형의 구성 요소들을 드러내는 것을 보는 데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산책의 중심에서 불안한 환영이 나타난다. 보들레르는 이를 『일곱 노인들(Les Sept Vieillards)』에서 강하게 전개했다. 이처럼 자신의 복수성 속에서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제시되는 개인은, 도시인이 아무리 기이하고 특이한 특성들을 동원한다 해도, 더 이상 유형이라는 마법의 원을 끊어낼 수 없다는 불안을 암시한다.” (242–243) 해당 에세이는 Walter Benjamin, “Notes sur les Tableaux parisiens de Baudelaire”, Écrits français(1991): 235–243 참조.

(2) [역주] 이들은 모두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즉흥극 형식인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각 인물들은 고유한 사회 계층, 성격, 역할, 몸짓을 상징하면서 가면극의 인물 유형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아를레킨은 하층 계급의 하인을, 민첩하고 교활하며 장난기가 많은 특징이 있고, 주로 다이아몬드 무늬의 이상과 검은 반가면을 하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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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Giorgio Agamben, “Per un’etica del cinema,” in Immagini: Note di teoria e politica dell’immagine, edited by Michele Di Monte (Rome: Meltemi, 2006), pp. 171–179. 영어 번역본은 Henrik Gustafsson, Asbjørn Grønstad eds., Cinema and Agamben: Ethics, Biopolitics and the Moving Image, Bloomsbury Academic, 2014년 1월 16일, pp.18~24. 본 번역은 영어본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