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윤리학을 위하여
For an Ethics of the Cinema
III. 스타(divo)(3)
이미 개체화 원리가 ‘유형’을 향해 상당히 진전된 시기에 등장한 영화는, 그 출현과 함께 무엇을 작동시키는가? 영화와 연극과의 유사성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무대와 세트는 겉보기에 연속성이 있어 보이지만, 영화는 결코 자신의 몸을 언어 속 인물에게 내어주는 배우를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서로 다른 긴장의 정도들일 뿐이며, 그 스케일의 정점에는 오직 영화에만 존재하는 역설적인 존재, 즉 ‘디보(divo)’, ‘스타(star)’가 자리하고 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에서 각각 신성하거나 천상의 영역을 가리키는 이 용어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디보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배우가 자신의 배역과 맺는 관계라기보다는 신 이나 반신(半神)이 자신이 등장하는 신화들과 맺는 관계를 더 떠올리게 한다. 후자들, 즉 그 인물들은 디보의 제스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연극에서처럼 그가 인물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는 신화적인 존재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방식은 정확히 말해, 그 이름을 공유하며 스타를 지탱하는 심신을 가진 개인의 존재 방식도 아니고, 스타가 등장하는 영화들의 존재 방식도 아니다. 스타의 지위는 개체화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역설적이다. ‘게리 쿠퍼’나 ‘마를렌 디트리히’는 개별 인물이 아니다. 이들은 집합론의 용어로 말하자면, 단 하나의 원소만을 포함하는 집합(singleton)이거나 자기 자신만을 포함하는 집합(a ∈ a)과 같은 존재다. 천사의 경우, 개체는 스스로 종(species)이 된다. 하지만 디보의 경우, 유형(type) 그 자체가 개체가 되며, 스스로의 전형(exemplar)이 된다.*
그리고 영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배우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인물들(적어도 연극적 전통에서의 인물들[êthê]에 상응하는 인물들)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 속 ‘등장인물’과 배우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실제로 설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오이디푸스나 햄릿은, 그들에게 차례로 ‘인격’을 부여하는 배우들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애수의 호수 Leave her to Heaven>(존 M. 스탈, 1945)의 엘렌 베렌트나 <아카딘씨 Confidential Report>(오슨 웰스, 1955)의 그레고리 아카딘은 진 티어니나 오슨 웰스와 분리될 수 없다. (이 점은 아주 단순한 관찰로도 명확히 증명된다. 리메이크는 동일한 텍스트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화다.) 다시 말해, 개별 의식과 등장 인물은 함께 포착되어 개별적 삶과 집합적 삶이 뒤섞이는 어떤 영역으로 옮겨간다. 유형(type)은 이제 자신의 육체 안에서 상품의 추상성과 반복 가능성을 실현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디보(divo)는 마르크스적 의미의 ‘유적 존재(generic being)’를 일종의 패러디적 방식으로 실현한다. 이때 개별적 실천은 즉각적으로 그 자신의 유와 일치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고찰은, 왜 영화가 연극과 철학의 유산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의 계승자들에게 그렇게 깊은 흥미를 유발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과거 그리스 비극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형이상학 전통의 핵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일관성, 존재 방식, 즉 하나의 육체가 어떻게 언어라는 유적 능력을 체현하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신학이 삼위일체 존재론이라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정식화하려 할 때, 결국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연극적 용어였고, 그 존재론을 실체(substance)와 인격(prosôpon, 가면) 사이의 접합으로 밖에 사유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존재 방식의 이러한 변형의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국면이 예술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지점까지 우리를 데려간다는 것, 그리고 디보라는 존재가 우리 시대에서 있어 가장 강력한 집합적 열망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종말은, 실로 현존재(Dasein)의 마지막 형이상학적 모험의 장송곡처럼 울려 퍼진다. 우리가 지금 막 목도하고 있는 포스트 시네마의 황혼 속에서, 어떠한 형이상학적 본질도, 신학적 모델도 벗겨진 채 남겨진 인간이라는 준(準, quasi)존재는 이제 그 고유한 유적 일관성을 다른 어딘가에서 새롭게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윤리-연극적 인격 너머에서, 상품화된 유형의 연속성과 신성한 스타라는 단일 유적 존재 또한 넘어서는 곳에서 말이다.*** (끝)
각주
(3) [역주] divo 는 이탈리아어로 남성 스타나 카리스마 있는 남자 연예인을 뜻한다. 여성형은 diva 이다.
* 스타는 유일무이한 예외이자 반복 가능한 유형이라는 역설적인 존재 방식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다.
** 영화는 인간의 내면이나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현존, 이미지의 강도, 반복 가능한 기호의 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 인간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수행해온 존재론적 탐험은 포스트 영화나 영화의 종말을 말하는 오늘날 그 가능성을 상실하고, 현존재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 이 상품화된 연속성이나 유형적 소비의 질서 속으로 해체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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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Giorgio Agamben, “Per un’etica del cinema,” in Immagini: Note di teoria e politica dell’immagine, edited by Michele Di Monte (Rome: Meltemi, 2006), pp. 171–179. 영어 번역본은 Henrik Gustafsson, Asbjørn Grønstad eds., Cinema and Agamben: Ethics, Biopolitics and the Moving Image, Bloomsbury Academic, 2014년 1월 16일, pp.18~24. 본 번역은 영어본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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