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작가인 테드 창(Ted Chiang)이 《뉴요커》에 기고한 에세이인 '왜 A.I.는 예술을 만들 수 없는가?'(Why A.I. can't Make Art?, The New Yorker, 2024. 08. 31.) 를 번역한 글입니다.
● 번역은 총 3회로 진행될 예정이며, 순서는
1. 왜 A.I.는 예술을 만들 수 없는가? ①
2. 왜 A.I.는 예술을 만들 수 없는가? ②
3. 테드 창의 논의에 대한 ChatGPT 의 반론
으로 진행됩니다.
※ 본 번역은 비상업적 목적의 연구 및 아카이브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019년, 연구자들은 쥐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들은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구리선 세 개로 만든 조종 장치를 설치했고, 쥐가 특정 선에 앞 발을 얹으면 앞으로 가거나, 좌회전 혹은 우회전하게 만들었다. 쥐들은 방 건너편에 놓인 먹이를 보고, 그 쪽으로 가기 위해 조종 장치를 작동시켰다. 연구자들이 쥐에게 5분씩 총 24회의 훈련을 시키자, 쥐들은 운전에 아주 능숙해졌다. 종의 진화 역사 속에서 어떤 쥐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을 그 과업을, 쥐들은 단 24번의 연습만에 습득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능의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극찬하는 최신 A.I.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보자.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제로(AlphaZero)는 체스를 인간보다 훨씬 잘 둔다. 하지만 그 훈련 과정에서 무려 4천4백만 판의 게임을 두었다. 인간이라면 평생에도 다 못 두는 수치다. 알파제로가 새로운 게임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만큼 반복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숄레의 정의에 따르면 이런 프로그램들은 ‘매우 숙련된’ 존재일 수는 있지만, ‘특별히 지능이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효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프로그래머가 사전에 과업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 24회의 시도만으로 새로운 과업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다.
수백만 마일의 데이터를 학습한 자율 주행차조차, 전복된 트레일러 트럭 앞에서는 사고를 낸다. 훈련 데이터에 그런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운전학원 첫날 수업을 받는 초보자도 전복된 트럭 앞에서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인간을 지능적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대수 방정식을 푸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낯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이다.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으려면, 이런 능력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날은 아직 멀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단지 어디에 ‘터보 모드 자동완성(auto-complete)’을 붙일 수 있을지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
수 년간의 과장된 기대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A.I.가 경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이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 초, 골드만 삭스는 “생성형 A.I.: 지나친 투자, 부족한 성과?”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A.I.가 가장 잘해온 일은, 우리가 읽는 글과 우리가 쓰는 글 모두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었다. 생성형 A.I.는 근본적으로 ‘탈인간화(dehumanizing)’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우리를 ‘의미를 창조하고 이해하는 존재’가 아닌, 그 이하의 존재로 취급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의도’의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어차피 인간이 하는 말이나 글도 대부분은 그다지 독창적이지 않다.” 그 말은 사실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미안해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이 과거에 수없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미안해요”라는 문장이 통계적으로 흔하디 흔한 문장이라는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다면, 그 말은 여전히 의미있고 가치 있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너를 만나 좋았어”라고 말할 때도, 그것이 새로운 표현이 아닐지라도, 그 말은 진심이며, 의미있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도 이와 같다. 소설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영화를 만들든, 당신은 당신과 타인 사이의 ‘소통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당신이 만드는 것이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당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마주하는 누군가의 삶 속 특정한 순간에 도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그것을 새롭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산물들이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세상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그것은 자동완성 알고리즘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누가 그 가능성을 말하더라도, 그 말에 절대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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