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영화 속 인간과 로봇 사이의 긴장
2. 비인간 인공 생명체의 정동의 문제
3. AI 정동에서 체현의 문제
4. 감정의 모빌리티
5. 나가며
로봇은 자연 생명을 모방, 증강하고 나아가 능가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로부터 탄생했다. 이러한 로봇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청동 로봇 탈로스와 판도라가 대표적인 예로, 이는 인간의 형상을 한 ‘안드로이드’에 대한 신화 시대의 상상이라 할 수 있다.(1) 중세 시대에는 13세기 독일 철학자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가 다양한 금속 재료로 ‘자동인형(automaton)’을 만들었으며, 사람의 형상으로 동작을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안드로이드’라고도 불렸다.(2) 17~18세기에 접어들어, 음악을 연주하는 인형, 글 쓰는 인형, 그림 그리는 인형, 태엽으로 움직이는 오리 등 무수한 자동인형이 만들어졌다. 이 당시 자동인형은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오브제였다.(3) 자동인형으로 불리던 비인간 기계 존재에 ‘로봇(robot)’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20년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가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이었다. 이때 로봇의 어원은 ‘법정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robota’로, ‘강제적인 노동’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 여기에는 인간을 대신하여 노동을 수행하는 기계의 ‘효용’ 그리고 ‘기계적 경직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로봇은 인간보다 증강된 성능이라는 측면에서 효용성을 가지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경직성이 로봇의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 존재로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표지로 통용되었다는 것을 개념의 어원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사에서 로봇(자동인형)을 등장시킨 최초의 SF 영화는 (지금은 필름이 유실된)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의 1897년 무성 단편영화 <어릿광대와 꼭두각시(The Clown and the Automaton)>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어릿광대가 로봇의 제멋대로의 움직임에 당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기계에 대한 불안감과 이로 인한 불화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표현하고 있다.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프리츠 랑, 1927)는 인간과 로봇 사이의 불화와 긴장을 디스토피아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어릿광대와 꼭두각시>가 보여주는 영화사 초창기 테크노포비아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사 초창기 SF 영화에서 인간과 로봇 사이의 긴장관계가 테크노포비아적 서사로 드러났다면, 사이보그·안드로이드·복제인간·인공지능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현대 SF 영화에는 이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로봇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 양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로봇이 ‘진짜 인간 소년’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에이 아이(A.I.)>(스티븐 스필버그, 2001)에서 로봇인 데이비드(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분)는 자신을 유기하려는 양어머니에게 인간이 아니어서 죄송하다며 인간이 되겠으니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한편, 인간 여성을 사랑하게 된 로봇이 나오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크리스 콜럼버스, 1997)에서 로봇인 앤드류(로빈 윌리암스 분)는 사랑하는 여인과 삶을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에 선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앤드류는 사랑하는 그녀와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으로 죽기’를 선택한다. 이렇듯 SF 영화에서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서사는 인간의 신체나 감정 등–심지어 죽음까지도- 인간적인 요소의 기계적/비인간적 요소에 대한 우위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적인 가치에 항구적 우월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로봇이 등장하는 현대 SF 영화의 또 다른 경향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로 교체되고 기억이 삭제된 채 사이보그 로봇 경찰로 재탄생하는 경찰 이야기를 다룬 <로보캅(RoboCop)>(폴 버호벤, 1987)이 있다. 주인공 로보캅(피터 웰러 분)은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로 재탄생한 뒤 기억을 상실하지만, 점차 자신의 기계적 신체를 뚫고 나오는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에 혼란스러워한다. 종국에 로봇인 그의 정체성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억과 윤리이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라나 워쇼스키 & 릴리 워쇼스키, 1999)는 고치 안에서 인간이 건전지 역할을 하는 ‘실재’ 세계를 되찾기 위해, 인공지능이 구축한 하이퍼리얼(Hyper-real)한 시뮬레이션 세계의 안온함을 박차고 나오는 이야기로, 로봇에 대항하는 인간의 레지스탕스 서사이다. 위 영화들에서 인간과 로봇 사이에 일어나는 서사적 갈등은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비인간의 이분법, 그리고 주체가 객체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함의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영화 속 갈등은 로봇이 수동적 객체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율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인간 행위자성과 충돌할 때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대중문화인 영화 속에서 인간과 로봇의 이분법은 여전히 건드려지지 않고 남아있다.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배와 통제’라는 저변 구조가 계속해서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의 조건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4)
로봇을 비롯한 비인간 인공 생명체가 등장하는 SF 영화의 주체와 객체, 지배와 통제의 이항대립적 구도와 비인간 요소에 대한 인간적 요소의 우위 강조는 인간종중심주의적(5) 전통 속에서 배태된 역사적 산물이다. 그러나 근대성으로 인해 야기된 전지구적인 생태 위기 및 생성형 AI 등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시대 기술담론의 발전에 힘입어, SF 영화에서도 비인간 존재론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작품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글은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인간 남성 사이의 사랑을 그린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2013년도 영화 <그녀(Her)>를 인간종중심주의에서 비인간 존재론으로의 과도기적(transitional) 이행단계에 위치한 작품으로 바라본다. 신체라는 육화된 실체에 대한 인공지능의 열망 그리고 구매자인 인간에 의해 결정되는 여성으로서의 인공지능 젠더 등 기존의 인간종중심적 위계 및 젠더관계에 기초해 재현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녀>는 여전히 근대적 인간종중심주의의 자장 안에 위치한다. 그러나 실패한 과거의 사랑에 정박되어 버린 남자와 몸의 부재를 결핍으로 인지하는 인공지능이, 정동적 마주침과 부대낌 속에서 서로 영향받고 변용되는 과정을 전개함으로써, 기존의 인간종중심주의적 헤게모니로 포섭되지 않는 인간 vs 인공지능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이행기 서사의 가능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이 글은 <그녀>의 인공지능인 사만사(Samantha)를 개별적 주체성으로 바라보고 인공지능의 정동 가능성(affectability)을 살피고자 한다. 이때,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정동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가를 논하는 데 있어 핵심적 요소인 ‘체현’의 문제를 캐서린 헤일스의 ‘상호매개(intermediation)’ 개념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인공지능 특유의 편재성에 기인한 비배타적 관계(시어도어(Theodore)와 사랑하는 동시에 641명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있는 사만사의 관계 방식)의 의미화를 인공지능 정동의 ‘감정의 모빌리티’ 개념을 통해 논의할 것이다.
(1) 탈로스는 대장장이이자 발명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로봇으로, 크레타 섬을 지키는 임무를 담당했다. 탈로스의 머리부터 발까지는 하나의 관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 관 안에는 신들의 신비한 생명력인 ‘이코르’가 들어 있었다. 탈로스의 생체 시스템은 발목에 청동 못으로 봉인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그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마법사 메데이아는 영생을 줄 수 있다고 속삭이며 그의 발목의 청동 못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못의 봉인이 풀리자 이코르가 녹은 납처럼 흘러나오고 탈로스의 생명도 서서히 빠져나간다. 판도라는 인간에게 불을 허락한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기 위해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제조된 여성’ 즉 여성 안드로이드였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 재앙을 내보내고 희망을 가둔 것은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행한 행위였다. 에이드리엔 메이어, 안인희 역, 《신과 로봇: 우리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신화 이야기》, 을유문화사, 2020.
(2)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금속으로 만든 ‘안드로이드’의 사례는 일종의 지성적인 마술에 대한 변화된 태도를 드러내는 흥미로운 변형으로 반복적으로 회자되어 왔다. 마그누스가 제작한 안드로이드가 일종의 대화와 추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중세 인공지능의 판본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시오. Minsoo Kang & Ben Halliburton, “The Android of Albertus Magnus: A Legend of Artificial Being”, AI Narratives: A History of Imaginative Thinking about Intelligent Machines, Stephen Cave et al. eds.,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3) 데카르트를 필두로 하는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자동인형은 시대를 대표하는 오브제였다. 1600년경에 토마소 프란치니(Thomaso Francini)가 생-제르맹-앙-레이 왕실 정원에 설치했던 오토마톤과 이후 프란치니의 기계를 모방한 장치들이 데카르트의 기계로서의 동물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Simon Schaffer, “Deus et Machina: Human Nature and Eighteenth Century Automata”, Revue de la Maison Française d’Oxford No.9, 1998, p.39; 정희원, 「인공행위자의 감정 능력과 젠더 이슈: <미래의 이브>와 여성 안드로이드」, 《비교문학》 제82집, 한국비교문학회, 2020, 235쪽에서 재인용.
(4) N. 캐서린 헤일스, 이경란·송은주 옮김,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아카넷, 2016, 366쪽.
(5) 인간종중심주의(혹은 인류중심주의, anthropocentrism)는 종종 인간중심주의, 인본주의, 휴머니즘 등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나 그 개념은 확실히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인간 대 비인간 구도를 놓고 사용되는 용어인 인간종중심주의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와 이분법을 구성하고 정당화하며 재생산하는 사상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나르시시즘적인 특권을 부여하는 인간종중심주의는, 왜곡된 유럽 중심의 근대적 휴머니즘(인본주의)의 역사적 결과이기도 하다. 휴머니즘은 본래 모든 존재(인간 및 비인간 존재 포함)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며, 과학과 이성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기에, 근본적으로 인간/비인간의 이분법과 위계 구도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적 휴머니즘은 대문자 인간(남성, 백인, 비장애인 등)을 제외한 타자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기반으로 성립해왔고 그 과정에서 성차화되고 인종화된 타자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왔다는 것이 오늘날 휴머니즘에 대한 주된 비판이다.
▶ 다음 글 보기 : 2. 비인간 인공 생명체의 정동의 문제
* 이 글은 「인공지능 정동에서 체현의 문제와 감정의 모빌리티: 영화 <그녀(Her)>를 중심으로」(석당논총, 2024)를 편집 분할한 1/5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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