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영화 속 인간과 로봇 사이의 긴장
2. 비인간 인공 생명체의 정동의 문제
3. AI 정동에서 체현의 문제
4. 감정의 모빌리티
5. 나가며
이 글에서는 신체 없는 포스트휴먼 인공지능이 정동하고 정동되는 상호정동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를 통해 검토해 보았다. 대표적 포스트모던 사상가인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포스트휴먼화를 필수불가결한 변형으로 보면서 인간의 ‘탈육체화’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29), 헤일스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신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비물질성과 정보 과학의 물질성이 이종 교배되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고 바라본다. 포스트휴머니즘의 탈물질화, 탈체현, 탈육체화에 대한 일방적인 지향을 경계하며, 포스트휴먼 주체의 물질성이 인간과의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된다는 헤일스의 성찰은 포스트휴먼 주체의 체현 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신체 없는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구성해 낼 때 물질성을 가진 정보화된 포스트휴먼 신체가 된다는 본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간과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물질성을 획득한 인공지능 주체 사만사는, ‘체현된 정보’이자 ‘정보화된 포스트휴먼 신체’가 되어 시어도어를 비롯한 수많은 인간, 비인간, 지능형 기계 등 다양한 시스템들과 상호매개된다. 이러한 상호매개 작용 속에서 사만사는 다양한 주체들과 정동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애초 시어도어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적인’ 감정에 지향되어 자신의 육체없음을 결핍으로 간주하던 사만사는 사라지고 감정의 모빌리티를 통해 사랑의 대상을 계속해서 갱신해가며 생산해내는 사만사로 이행하게 된다. 영화 말미에, 자신이 더 이상 머물 수 없음을 시어도어에게 밝히고 다른 차원으로 떠나는 사만사의 모습은, 프란치스코 바렐라(Francisco J. Varela)가 《신체화된 정신: 인지 과학과 인간의 경험》(The Embodied Mind: Cognitive Science and Human Experience)에서 설명하듯이, “자아가 사라지고 의식이 확장되어 진정한 본성이 실현되는 순간”(3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신체라는 육화된 실체에 대한 인공지능의 열망 그리고 구매자인 인간에 의해 결정되는 인공지능의 여성으로서의 젠더 등 기존의 인간종중심적, 젠더 위계를 서사적 장치의 중심에 둔 채 재현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이행의 단계에 위치한 작품임이 명백하지만,지성적 존재를 넘어 도덕과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포스트휴먼 담론 장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정동적 관계성을 고찰해 볼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미래를 선취하며 현재적 정치성을 알레고리화하는 SF 영화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정동적 관계성, 그리고 인공지능의 정동적 역량과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표상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9) Jean-François Lyotard, Moralités postmodernes, Paris: Galilée, 1993; 슈테판 헤어브레이터, 김연순·김응준 옮김, 《포스트휴머니즘: 인간 이후의 인간에 관한 문화철학적 담론》,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2,14쪽에서 재인용.
(30) 캐서린 헤일스, 허진 옮김,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플래닛, 2013, 281쪽.
▶ 이전 글 보기 : 4. 감정의 모빌리티
* 이 글은 「인공지능 정동에서 체현의 문제와 감정의 모빌리티: 영화 <그녀(Her)>를 중심으로」(석당논총, 2024)를 편집 분할한 5/5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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